흥행에 성공한 애니메이션이 명작이고, 흥행에 실패한 애니메이션은 졸작일까요? 저는 이 공식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드림웍스의 가디언즈(Rise of the Guardians)는 북미에서 개봉 전 영상이 유출되는 불운까지 겹쳐 흥행에서 처참히 무너졌지만, 저는 이 영화를 일부러 영화관에서 감상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주인공인 '잭 프로스트' 때문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을 앞세운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외형이어서 직접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디언즈 주인공과 설정, 비평점, 한국적 상상력을 주제로 작성하겠습니다.
가디언즈 주인공과 설정
가디언즈는 2012년에 공개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비 1억 5천만 달러가 투입됐습니다. 꽤 큰 제작비가 들어갔으나, 전 세계 흥행 수익은 약 3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흥행 실패는 드림웍스가 직원 350명을 해고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106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지만, 드림웍스 작품 기준으로는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작품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꾸준히 회자될까요? 저는 이것이 '잭 프로스트'라는 인물의 힘이라고 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계기도 디즈니의 '겨울왕국'에 등장한 공주들, '드래건 길들이기' 속 남자 주인공을 소재로 한 2차 창작물 때문이었습니다. 2차 창작물이란 원작의 인물이나 세계관을 그 작품의 팬들이 재해석해서 그림, 소설, 영상 등으로 만들어내는 창작물을 말합니다. 당시 잭 프로스트의 2차 창작물은 양과 질 모두 압도적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현상의 주요한 이유는 '잭 프로스트의 캐릭터 디자인'이라고 봅니다. 객관적으로 잭 프로스트는 드림웍스가 내세운 남자 주인공 중 완성도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창백한 피부, 흰 머리카락, 파란 눈과 낡은 청색 후드티의 조합은 단순해 보이지만 시각적 인상이 강렬합니다. 개성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잘생긴 얼굴도 특징적입니다. 이런 '비주얼 아이덴티티(Visual Identity)', 즉 캐릭터가 한눈에 인식되도록 설계된 시각적 특성이 인기의 핵심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세계관 설정도 독특합니다. 영화 속 가디언즈와 악당은 모두 아이들의 믿음을 동력 삼아 존재합니다. 자신을 믿는 아이가 많을수록 힘이 강해지고, 반대로 믿는 아이가 없어지면 존재 자체가 희미해집니다. 이 설정은 영화 속 서사 전체를 지탱하는 내러티브 엔진(Narrative Engine) 역할을 합니다. 내러티브 엔진이란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추진력을 제공하는 핵심 설정이나 갈등 구조를 가리킵니다. 잭 프로스트가 아무도 볼 수 없는 존재였던 이유는 이 설정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안기는 장면을 통해서 그가 누군가에게 인식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냅니다. 가디언즈의 세계관 안에서 각 인물이 상징하는 핵심적인 가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잭 프로스트는 즐거움과 자유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형 인물입니다. 산타클로스는 믿음과 경이로움을 지키는 지도자입니다. 부활절 토끼는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이빨 요정은 아이들의 기억과 추억을 보존하는 존재입니다. 샌드맨은 꿈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는 조용한 수호자입니다.
비평점, 아쉬운 점과 영화가 남긴 점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고르지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긴장감의 부재였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이 흔들리고, 절대적으로 불리하던 상황이 너무 손쉽게 해결됩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전개는 완성도의 아쉬움으로 이어집니다. 결정적인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주인공으로 내세우던 잭이 아니라 샌드맨이 됩니다. 이 구조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느껴졌습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이야기의 갈등이 논리적 흐름 없이 외부의 힘으로 갑자기 해결되는 서사 기법을 뜻하며,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주인공이 직접 위기를 돌파해야 카타르시스가 생기는데, 가디언즈는 그 지점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대상 관객층을 명확히 잡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심오하고, 어른에게는 다소 가볍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10대 청소년층이 보기 좋았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작품의 서사를 설계할 때 주요하게 겨냥하는 연령과 성향의 관객층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확실한 관객층이 없다면 마케팅과 입소문 모두에서 힘을 잃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내면 서사 때문입니다. 잭은 과거에 얼어붙은 호수에서 여동생을 구하다 스스로 희생한 인물입니다. 그 기억을 잃어버린 채 수백 년을 떠돌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몰랐던 잭은 마지막에 기억을 떠올립니다. 영화의 서사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잭의 서사에는 감정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한편 영상미는 비판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래를 묘사하는 장면들은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Physics-based Simulation), 즉 실제 물리 법칙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 CG 기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황금빛 꿈의 모래와 검은 악몽의 모래가 충돌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아름답습니다. 드림웍스가 이 영화에 쏟아부은 기술력은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입니다(출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한국적 상상력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린이의 꿈을 지켜주는 존재'라는 소재와 모티브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어떤 인물이 등장할지 상상했습니다. 가디언즈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산타클로스, 부활절 토끼, 이빨 요정 등입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서구권, 특히 미국의 문화에서 비롯된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설정은 보편적이지만, 그 수호자는 미국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깨비, 삼신할머니,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속 호랑이, 저승사자, 한국 설화 속 공주, 용과 같은 상상 속 동물들, 혹은 아이들에게 잠을 선사한다는 한국 신화 속 존재들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이런 한국의 민간신앙과 설화 속 존재들은 충분히 독창적인 세계관의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이 방향의 시도가 서서히 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전통 설화와 민속 요소를 활용한 IP 개발이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가디언즈는 흥행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 속의 '아이들의 상상력을 지키는 존재는 누구인가'는 주제는 문화권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설정을 한국의 맥락에서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 영화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마음에 남는다면 원작인 윌리엄 조이스의 책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미처 다 담지 못한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