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지브리 작품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이거 지브리 작화랑 다른데?'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고 나서야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라는 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브리 작품인 것을 떠나, 어릴 때는 이 영화의 감성이 좋아서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 글은 고양이의 보은 줄거리, 영화 속 자아성장, 평가를 정리했습니다.
고양이의 보은 줄거리, 비일상적인 모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늦잠을 자고, 지각을 하고,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여고생입니다. 그녀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에 비일상적인 모험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굣길에 우연히 트럭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평범한 줄 알았던 고양이가 갑자기 두 발로 일어서서 구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사실 알고 보니 그 고양이는 고양이 왕국의 왕자였고, 보은의 대가로 신부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고양이 왕국은 걱정도 없고 파티가 매일 열리는 곳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왕국에 머무를수록 주인공은 조금씩 고양이로 변해갑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가는 위기에 처하는데, 저는 이 설정이 기존의 지브리 작품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굉장히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신기하고 낯선 세계에 끌려 들어가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구조 말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캐릭터가 '바론'입니다. 그는 고양이 사무소의 신사 남작으로, 주인공을 도우러 왕국까지 쫓아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느낀 건, 바론이 그저 하루를 구해주는 역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선택의 기회를 만들어줄 뿐, 결정은 항상 주인공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결국 주인공은 스스로 왕국의 탈출을 선택하고, 동이 트기 전 탑을 올라 인간 세계로 돌아옵니다. 이 선택으로 그녀는 내면의 성장을 경험합니다.
자아성장
고양이의 보은이 단순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영화 전체가 '자아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 정체성이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정의하는 힘을 말합니다. 하루가 고양이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저 마법의 부작용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 없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며 자아를 잃어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부분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이런 점이 하루가 거울 앞에서 고양이 귀가 돋아난 자신을 보는 장면과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는 이와 관련해 '성장 서사'라는 장르적 문법을 충실히 따릅니다. 성장 서사란 주인공이 시련을 겪은 뒤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 성장의 증거로 제시됩니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이 바론에게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도 그냥 로맨스적인 장면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자기감정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자아와 정체성을 다룬 작품들에 대한 연구에서도, 판타지적 세계 경험이 청소년 주인공의 심리적 주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애니메이션학회). 그런 맥락에서 고양이의 보은은 오락성과 교육적 의미를 함께 갖춘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평가
고양이의 보은은 75분 영화로, 지브리 장편 애니메이션 중 가장 짧습니다. 보통 지브리 작품이 110~120분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약 3분의 2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이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엔 '좀 급하게 끝나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길었다면 지루했을 것 같습니다. 지브리 작품의 일반적인 특징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광활한 세계관, 인간과 자연의 대립, 스팀펑크적 상상력 같은 요소들이 꼽힙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그런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작화와 더불어 이 작품을 지브리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귀를 기울이면'의 스핀오프(spinoff)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스핀오프란 기존 작품의 세계관이나 등장인물 등 일부를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이 쓴 이야기라는 설정이어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현대 일상을 배경으로 한 가볍고 따뜻한 동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지브리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작품과 비교하면 세계관의 밀도나 상징 등 작품의 깊이가 얕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흥행 성적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성공 이후 개봉한 탓에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가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품의 서사 완성도를 평가할 때 기승전결의 명확성, 주제 전달력, 인물의 일관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데(출처: 일본애니메이션학회), 이 세 가지 기준에서 고양이의 보은은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특히 바론이라는 인물은 지브리 작품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인기 있는 캐릭터입니다. 신사적인 태도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고양이 캐릭터에게 설렌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고양이의 보은은 '나는 지금 내 선택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 볼 땐 가볍게 느껴지지만, 어른이 되어 보면 평화로운 작품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변화도 더 크게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