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개봉한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은 한국에서 OST로 더 유명합니다. 저는 여름만 되면 이 영화의 OST인 'Summer'를 듣습니다. 이 노래는 장난스럽고 즐겁고 통통 튀는 분위기라 즐거운 여름 방학이 연상됩니다. 이 영화에는 52세 철없는 어른과 9세 조숙한 소년이 함께 보낸 특별한 여름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마사오라는 소년이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지만, 실제로는 어른인 다케다가 잃어버린 동심과 사랑의 방법을 되찾아가는 성장 드라마입니다. 영화 제목이 뜻하는 진짜 의미가 마지막 3분 전까지 밝혀지지 않는 서술 트릭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속 OST와 어른과 아이로 이루어진 두 주인공의 성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쿠지로의 여름, OST가 전하는 감성
기쿠지로의 여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배경음악입니다. 특히 'Summer'라는 테마곡은 피아노와 현악이 만들어내는 감성적인 배경음악으로 일본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노래는 한국에 히사이시 조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이 음악만큼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영화 자체보다 OST가 더 익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은 영화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마사오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왕복 600km의 여정, 그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그리고 다케다 기쿠지로라는 어른이 겪는 내면의 변화를 유명한 테마 선율이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의 배경을 채우는 요소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대변하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핵심 장치로 작동합니다. 일본의 여름은 불꽃놀이, 여름 축제, 물놀이, 방학 숙제 등 어린이의 여름방학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즐겁고 활기찬 일화를 표면에 두면서도, 그 안에 어른의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를 숨겨두었습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이 이중적 구조를 완벽하게 포착하여, 경쾌하면서도 애잔하고, 밝으면서도 쓸쓸한 여름의 양면성을 들려줍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마사오의 외로움, 다케다의 서툰 애정 표현,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배워가는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어른의 성장과 변화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소년 마사오가 아니라 52세의 철없는 어른 '다케다'입니다. 기타노 타케시가 직접 연기한 다케다 기쿠지로는 과거 야쿠자였습니다. 현재는 집에서 노는 한량으로, 등에 커다란 문신이 있지만 수영도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내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마사오의 보호자를 맡게 됩니다. 그는 초반에 불량스럽게 행동합니다. 그는 소년의 엄마를 찾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내가 준 돈을 차비로 쓰지 않고 탕진해 버리고, 소년이 가진 돈마저 술 마시는 곳에 써버립니다. 마사오에게 옷을 사주는 듯하다가도 또다시 돈을 탕진하고, 심지어 택시를 훔치고 호텔에서 깽판을 부리는 등 도무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 다케다는 소년이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영화의 핵심은 다케다가 마사오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린 엄마를 목격한 마사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다케다는 아이를 위로합니다. 축제에서 노점상 주인과 싸우고, 나쁜 사람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소년을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다른 어른들과 함께 마사오에게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케다가 요양원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은 그 역시 사랑에 서툰, 상처받은 어른임을 보여줍니다. 소위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돌려줄 줄 안다'는 말처럼, 다케다는 마사오를 돌보면서 비로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마사오가 엉뚱한 일들을 겪으며 아이다운 웃음을 보이게 되는 것처럼, 다케다 역시 책임감과 진심 어린 감정 표현을 알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 마사오에게 할머니께 잘해 드리라는 당부를 꺼내며 꼭 안아주는 장면에서 우리는 완전히 달라진 다케다를 만나게 됩니다. 이름을 묻는 마사오에게 투덜거리며 '기쿠지로'라고 답하는 순간, 관객은 이 여름이 누구의 성장 이야기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정이 담은 상처와 치유
9세 소년 마사오는 할머니와 단둘이 도쿄에 살면서 여름방학이 되어도 친구들처럼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날 수 없어 심심해합니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그의 모습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감정 표현 부재를 보여줍니다. 마사오가 할머니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면 할머니는 돈 벌어온다고 갔다며 화를 버럭 냅니다. 사실은 소년의 어머니가 재혼한 것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마사오는 사진 한 장과 주소 하나를 들고 무작정 엄마를 찾아 떠나지만, 겨우 찾아간 엄마의 집에는 자신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마사오는 진실을 알고 쓸쓸히 뒤돌아섭니다. 하지만 엄마를 찾아간 여정은 마사오에게 실망과 상처만을 안긴 것이 아닙니다. 다케다를 포함하여 여정에서 만난 다양하고 친절한 어른들은 마사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특히 마사오의 사연을 듣고 딱하다고 여긴 사람은 거친 외모와 달리 순박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수박 깨기, 밧줄 타기 등 간소한 여름 축제를 만들어줍니다. 다른 어른은 북두칠성 전설을 들려주며 마사오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그 결과 마사오는 더 이상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오는 악몽이 아닌 행복한 꿈을 꾸게 됩니다. 즐겁고 행복한 꿈처럼, 마사오의 내면은 서서히 밝아지고 감정 표현도 풍부해집니다. 다케다가 다쳤을 때, 마사오는 늦은 밤에 문이 닫힌 약국 문을 두드리며 약을 사와 그를 치료해 줍니다. 이는 마사오가 책임감과 타인을 돌보는 방법을 배웠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 마사오를 통해 우리는 어른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표면적으로는 소년이 엄마를 찾는 여정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성인으로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동심을 찾으려는 어른의 모험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배우지 못한 감정을 배우고,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돌볼 수 있게 됩니다. 나이를 뛰어넘는 친구,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여름 방학에 꽉 채운 일기장'처럼 신나고 멋진 일입니다. 이 영화는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자 과거에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되며, 진정한 성장은 나이와 무관하게 타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