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처음에 디즈니에서 제작한 인어공주 영화를 봤을 때 OST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인어공주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이 떠올랐습니다. 세이렌이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했다는 바다의 존재인데, '인어'가 세이렌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디즈니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어공주의 OST, 심리를 정리하겠습니다.
디즈니 르네상스의 시작점이 된 작품
1989년 개봉한 인어공주는 디즈니가 오랜 침체를 끝내고 다시 전성기를 연 출발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디즈니 르네상스의 첫 작품입니다. 이 시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진 흥행 부진을 딛고,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디즈니가 다시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게 된 시기입니다. 4,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1억 1,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전 세계 수익은 2억 1,000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 수치가 후속작들에 비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당시 디즈니의 상황을 감안하면 흥행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이 작품은 셀 애니메이션(cel animation) 기법으로 제작된 디즈니의 마지막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셀 애니메이션이란 투명한 셀룰로이드 필름 위에 직접 채색하여 한 장씩 그린 그림을 연속으로 촬영하는 전통적인 손작업 방식입니다. 이 작품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채색과 CG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3년의 제작 기간 동안 400명 이상의 예술가와 기술자가 100만 장이 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손작업으로 제작된 영화임에도, 에리얼의 붉은 머리카락이 물속에서 흔들리는 장면은 자연스럽습니다. 디지털이 아닌 손으로 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제작진은 특히 수중 세계를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부력(buoyancy)과 유체 역학(fluid dynamics)을 시각적으로 구현해야 했습니다. 부력이란 물속에서 물체가 위로 떠오르려는 힘을 말하고, 유체 역학은 물처럼 흐르는 매질 속에서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분야입니다. 에리얼의 머리카락과 꼬리 움직임이 실제로 물속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 원리를 애니메이션에 적용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실험한 결과물입니다. 원작 동화는 인어공주가 왕자와 맺어지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디즈니가 결말을 바꾼 것이 좋았습니다. 비극적인 원작도 의미 있지만, 에리얼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제로 손에 넣는 결말이 성장 서사로서 더 완결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어공주는 개봉한 지 3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계속 화자 되는 디즈니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래서 실사 영화가 나왔을 때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에리얼의 붉고 풍성한 머리카락, 그리고 그 시절 디즈니만이 가졌던 악당의 개성이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디즈니에서 만든 실사화 영화들이 모두 실망스러워서 과거에는 디즈니의 르네상스를 이끈 작품이 현대에는 그러지 못했다는 아이러니가 씁쓸했습니다.
OST
인어공주의 음악은 작곡가 앨런 멩컨과 작사가 하워드 애쉬먼이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Original Score)과 주제가상(Best Original Song)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영화의 많은 OST 중, 'Under the Sea'가 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대표곡인 'Part of Your World'를 가장 좋아합니다. 에리얼이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욕망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모르는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것뿐만이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이론에서는 이런 노래를 '아이 원트 송(I Want Song)'이라고 부릅니다. 아이 원트 송이란 주인공이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관객에게 처음으로 드러내는 곡으로, 이후 이야기 전체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구조는 인어공주 이후 디즈니 뮤지컬의 기본 공식이 됐습니다. 반면 'Under the Sea'는 흥겨운 곡이지만, 저는 이 노래를 볼 때마다 약간 씁쓸한 감정이 듭니다. 세바스찬이 지금 가진 삶에 만족하라고 설득하는 내용인데, 에리얼은 그 노래 중간에 슬그머니 사라져 버립니다. 안정을 택하라는 조언과 가능성과 변화를 향해 나아가려는 욕망이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에리얼이 느끼는 답답함에 저도 공감이 됐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면은 남녀 주인공이 배를 타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OST는 'Kiss the Girl'입니다. 'Under the Sea'에서의 태도와 달리 그녀의 사랑을 응원하는 세바스찬의 태도가 대비되는 장면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 서서히 서로의 마음을 자각하는 장면입니다.
인어공주 심리와 해석
인어공주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에리얼은 호기심이 넘치고 주체적인 인물입니다. 에리얼은 왕자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인간 세계의 물건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에서는 에리얼의 행동을 청소년기의 자율성 탐색과 연결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발달심리학이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환경을 벗어나 스스로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청소년 성장 서사의 전형적인 행동 양상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트라이튼 왕의 과도한 통제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부모의 사랑과 아이의 주체성이 충돌하는 모습으로 읽힙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트라이튼이 제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엄하게 굴게 되는 그 모습이요. 그래서 에리얼이 철없는 사춘기 소녀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동시에 그녀의 답답함도 이해가 됐습니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르술라도 그냥 악당으로만 보기엔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일반적으로 악당은 주인공을 방해하는 존재로만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르술라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입니다. 저는 이 시절 디즈니가 만들어낸 악당들이 특히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르술라는 여성 악당이면서도 바다의 왕이 되겠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디자인과 목소리 또한 강렬합니다. 에리얼이 목소리를 잃는 설정은 자기표현(self-expression)의 상실이라는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자기표현이란 개인이 자신의 생각, 감정, 정체성을 외부에 드러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목소리를 잃은 에리얼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에릭과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은, 말이 없어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지 않으려는 싸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