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족을 주제로 한 창작물이 수없이 많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엄지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있죠. 2010년 개봉한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고 나서, 지브리가 보여준 '소인족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주전자에 매달린 물방울을 퍼담아 마시는 장면이 귀엽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브리답게 일상 속에 멋진 상상력과 풍경을 더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루 밑 아리에티의 OST, 세계관, 소인족을 분석하겠습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OST
마루 밑 아리에티의 음악을 담당한 것은 프랑스 출신의 뮤지션 '세실 코르벨'입니다. 저는 영화를 다시 보지 않아도, 이 OST를 들으면 영화 속 감성과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편안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종종 이 음악을 듣습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작은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실 코르벨의 음악은 다이어토닉 스케일(Diatonic Scale)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다이어토닉 스케일이란 한 옥타브를 7개의 음으로 나누는 음계 체계로, 클래식과 민속 음악 모두에서 자주 쓰이는 기초적인 구조입니다. 이 단순한 음계 위에 하프의 투명한 음색이 얹히면서, 음악은 의도적으로 '작고 가볍게' 들립니다. 그게 이 영화의 세계를 표현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소인족의 시선에서 세계를 경험하게 만들기 위해, 음악 자체의 질감도 그 크기에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음악이 '채우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는 겁니다. 많은 장면에서 음악은 빠지고, 바람 소리나 발소리 같은 폴리 사운드(Foley Sound)가 전면에 나옵니다. 폴리 사운드란 영상의 현장음과 별개로 후반 작업에서 새롭게 녹음해 삽입하는 효과음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는 인간 공간과 소인족 공간에서 음향의 밀도를 달리해 두 세계의 거리감을 표현했습니다. 소인족이 발을 딛는 소리, 바늘로 벽면을 찍는 소리 하나하나가 크게 들리는데, 이 연출이 관객을 자연스럽게 아리에티가 사는 세상으로 끌어당깁니다.
세계관 분석: 빌린다는 것의 의미
한국에서 이 작품 제목은 '마루 밑 아리에티'이지만, 일본어 원제는 직역하면 '빌려서 사는 아리에티'입니다. 제목 자체가 이미 이 작품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빌린다'는 행위는 그들의 생존 방식보다는, 인간이 자연과 자원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메타포(Metaphor)로 읽힙니다. 메타포란 직접적인 언급 없이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수사적 표현 방식입니다. 이 작품은 소인족의 삶 전체를 통해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은 사실 빌린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원작은 영국 작가 메리 노튼(Mary Norton)이 1952년부터 1982년 사이에 발표한 다섯 편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빌리는 자들(The Borrowers)'입니다. 이 시리즈는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작품으로, 영국 도서관 협회 등에서 꾸준히 추천 도서로 선정되어 왔습니다(출처: 영국도서관협회 CILIP).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미 1960년대 20대 시절부터 이 원작을 극장용 영화로 만들고 싶었으나, 당시 재직하던 회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 그는 2008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기획을 꺼냈습니다. 40년 이상을 품고 있던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상업 애니메이션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독을 맡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당시 36세였습니다.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젊은 시절의 미야자키가 구상한 작품이니 젊은 감독이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 결정이 지브리 내부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올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맥락을 알고 나서 영화를 보니, 아리에티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이야기 자체가 요네바야시 감독의 첫 도전과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쇼우와 아리에티의 관계도 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축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저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지브리가 보여주는 남녀 주인공 작품이라 로맨스적인 전개를 어느 정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닌 친구 수준에서 관계가 마무리됐습니다. 솔직히 그 부분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가 완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소인족이라는 소재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평화적이고 일상적인 장면에 지브리적인 따스한 상상력을 더했고, 작은 것의 시선으로 세계를 크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는 2010년 일본 현지에서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2011에서 애니메이션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으며,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구조가 아닌 안정적인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출처: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미국에서는 1900만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며 당시 북미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08만 5,513명의 관객을 기록했는데, 이 수치는 15년 이상 한국에서 흥행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순위 중 10위권을 지켰습니다. 이 기록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됐는지를 생각하면 지브리의 저력이 느껴집니다. 인류학적 시선에서 보면 흥미로운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의 소인족 설정이 멸종 위기에 처한 소수민족, 특히 아이누족의 문제를 은유한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누족은 일본의 소수 선주민으로, 오랜 세월 동안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며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온 집단입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아리에티 가족이 집의 마루 밑에서 들키지 않으려 살아가는 장면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 측면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은유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리에티가 바늘을 검처럼 차고 다니고, 빨래집게를 머리끈 대신 사용하는 장면들입니다. 거대한 인간 세계의 물건들이 소인족에게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인다는 발상이 기발했고, 그 요소가 세계관의 설득력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 이후로 재료와 조리 도구를 아주 작게 만들어, 미니어처 요리를 만드는 영상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유행이 이 애니메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