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어렸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치로 나라를 망하게 한 왕비'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도 당연히 그녀가 한 말인 줄 알았고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2006년 영화를 보고 나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흔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영화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지만, 그래도 흥미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의 역사 왜곡, 심리 묘사, 베르사유 궁전에 방문했을 때 제가 느낀 것들을 작성했습니다.
역사 왜곡이라는 말, 정말 맞는 말일까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비판이 바로 역사 왜곡이었습니다. 실제로 칸 영화제 상영 당시 야유가 쏟아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질만큼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이 영화는 역사 사실을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 생략한 것들이 있습니다. 프랑스가 당시 겪고 있던 재정 위기의 구조적 원인, 귀족과 성직자의 면세 특권, 반복되는 흉작과 식량 가격 급등 같은 사회경제적 맥락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개인적인 씀씀이가 국가 재정에 끼친 영향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장 자크 루소의 저서에 유사한 표현이 이미 등장하는데, 그 시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오기 전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부분을 교묘하게 짚어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적들이 그녀에게 억울하게 붙인 말이라는 뉘앙스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역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사건의 재현보다 한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역사영화에서 정치적 맥락의 생략이 곧 왜곡인가 하는 질문은, 관람 전에 한번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합니다.
심리 묘사, 화려한 화면 뒤에 숨겨진 것
이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화려한 영상미에만 시선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영상미에 더 집중을 했습니다. 파스텔톤 드레스와 마카롱과 디저트, 공단 구두가 계속 바뀌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인물의 표정과 심리는 뒷전이었습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를 그저 도덕적 결함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과도한 소비 형태는 현대 심리학 개념으로 보면 회피 행동(avoidance behavior)에 가깝습니다. 회피 행동이란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직접 해소하지 못할 때 다른 자극을 통해 일시적으로 감정을 덮으려는 심리적 기제를 말합니다. 그녀가 파티와 사치를 멈추지 못하는 장면이 그걸 잘 보여줍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궁정 의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궁정 의례란 왕실 구성원의 기상, 식사, 취침까지 모든 일상을 공식적인 절차로 묶어두는 제도를 말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수십 명의 귀족 앞에서 속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아이를 낳을 때조차 방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저는 그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과장이 아니라, 실제 그랬다는 점이 왕비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작 혼자 있을 권리조차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14세에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기존의 정체성을 강제로 박탈당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타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많은 무시와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후계자를 낳지 못한다는 궁정의 집단적 압박이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했을 때, 여왕의 침실은 무척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출산 장면이 떠올라 저 자리에 있었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안타까웠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 속 배경, 베르사유 궁전
저는 프랑스 여행에서 베르사유 궁전 방문을 가장 기대했습니다. 궁전 안을 걷는 내내,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프티 트리아농도 방문했었습니다. '프티 트리아농'은 베르사유 궁전 안에 있는 작은 별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궁정의 복잡한 예절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던 곳입니다. 실제로 가보니 이름처럼 작고 아담하지만, 바로 옆에 그녀가 직접 조성한 전원 마을이 이어집니다. 커다란 호박들이 자라고 있었고, 오리와 거위가 돌아다니고, 물레방아와 호수가 있었습니다. 아름답게 꾸민 시골 마을처럼 보였습니다. 제 주변에는 은퇴 후에 시골로 내려가서 텃밭을 가꾸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과 그 사이 이해관계와 정치에 치이면서 느낀 피로감을 평화로운 환경에서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겠죠. 숨 막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로코코(Rococo) 양식'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로코코 양식이란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예술, 건축 양식입니다. 섬세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 파스텔 색조가 특징입니다. 영화의 의상과 배경이 이 양식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전문가들로부터도 인정받았습니다. 18세기 로코코 복식을 가장 완성도 높게 재현한 영화로 꼽히며,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을 수상한 것이 그 방증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 의상을 담당한 밀레나 카노네로는 역사적 재현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출처: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 마리 앙투아네트가 갖고 싶었던 것은 화려한 생활보다는 그녀의 삶과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화려한 왕비의 일생을 다룬 영화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오리가 돌아다니는 조용한 호숫가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닐던 모습이었으니까요. 역사적 맥락이 좀 더 담겼다면 인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의미 있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죄의 대상에서 한 인간의 자리로 돌려놓았다는 점입니다. 그 출발점에서 실제 역사를 더 찾아보게 된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