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제가 대학생 때 개봉했는데, 제 주변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물 간의 관계성이 좋고, 각 인물들이 매력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메이즈 러너는 1편만 보면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1편을 영화관에서 봤던 입장에서, 다음 속편을 봐야 전체 이야기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메이즈 러너 영화의 공간, 세계관, 흥행 부분에서 정리했습니다.
공간이 만들어낸 긴장감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관객을 낯선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딜런 오브라이언이 연기한 주인공 토마스는 자신의 이름 외에 아무 기억도 없는 채로 '글레이드'라는 폐쇄된 공간에 눈을 뜹니다. 글레이드란 거대한 미로 한가운데 위치한 공터로, 소년들이 자체적인 규칙과 역할 분담 체계를 만들어 살아가는 곳입니다. 제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 공간 설정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릴 때 다녀온 극기 훈련소 분위기가 떠올랐달까요. 미지의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역할을 나누는 장면들이 그 기억과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 속 미로는 매일 밤 벽이 움직이고 구조가 바뀌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를 '다이내믹 미로'라고 하는데, 일정 주기로 내부 통로와 벽의 배치가 변하는 미로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미로의 변화가 탈출의 단서이자 생존의 열쇠가 됩니다. '러너(Runner)'라고 불리는 소년들이 매일 미로를 달리며 지도를 그려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로 안에서 소년들은 역할에 따라 여러 팀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 러너팀: 매일 미로를 탐색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핵심 인원. 팀장은 '민호'
- 건축팀: 글레이드 내 시설을 관리 및 유지. 팀장은 갤리
- 요리팀: 식량 조달 및 식사 담당. 팀장 프라이팬
- 치료팀: 부상자 치료를 담당. 제프와 클린트
영화에서는 이 역할 분담 구조가 오히려 공동체의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지금 있는 곳이 제일 안전하다'는 건축팀 팀장 갤리의 논리와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는 토마스의 본능이 부딪히는 지점이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입니다.
메이즈 러너 세계관이 던지는 질문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그리버(Griever)'입니다. 그리버란 미로 안을 배회하는 정체불명의 기계 생물 복합체로, 꼬리에 달린 주사기 독침으로 소년들을 공격합니다. 찔리면 이른바 '변화과정(Changing)'을 겪게 되는데, 이는 극도의 고통을 수반하면서 글레이드 이전의 기억 일부를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기억을 되찾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평범한 SF영화라면 기억 회복이 희망의 상징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반대였습니다. '위키드'는 이 모든 실험을 설계한 조직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설정에 따르면, 태양 플레어(Solar Flare) 현상 이후 지구에 '플레어 바이러스'가 퍼졌고, 이에 면역을 가진 소년들의 뇌를 연구해 백신을 개발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태양 플레어란 태양 표면에서 폭발적으로 방출되는 힘으로, 지구 전자기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영화 속 세계관에서는 이 현상 이후에 문명이 붕괴된 디스토피아(Dystopia)가 펼쳐집니다. 디스토피아란 이상 사회의 반대 개념으로, 억압과 통제가 지배하는 부정적인 미래 사회를 묘사한 서사 장르를 가리킵니다. 같은 시기 개봉한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시리즈와 함께 이 영화는 2010년대 청소년 디스토피아 SF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출처: IMDb). 개인적으로 배후 조직의 설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실험의 목적이 백신 개발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일을 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반복되는 구조가 묘하게 찜찜했습니다. 악당이 스스로를 선하다고 믿는 설정은 단순한 권선징악보다 훨씬 불쾌한 여운을 남깁니다.
흥행과 인물
메이즈 러너 1편은 북미에서 약 1억 242만 달러, 해외에서 약 2억 3,832만 달러를 벌어들여 총 3억 4,0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개봉 첫 주 북미 흥행만으로 제작비 3,400만 달러를 거의 회수한 셈입니다. 한국에서도 최종 관객 수 281만 2,427명을 기록하며 해외 흥행 3위에 올랐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제 경험상 이 영화의 흥행 이유를 꼽는다면 '인물의 매력'입니다. 제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러너팀의 팀장 민호를 보러 다시 극장에 갔습니다. 이기홍이 연기한 민호는 냉정하고 과묵하면서도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비중이 많은 인물은 당시에 흔하지 않아서 더 이 배우를 응원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제 주변에서는 다들 이 배우를 '감자'라는 별명을 붙여 부를 정도로 귀엽다며 좋아했습니다. 각 인물의 매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뉴트(토마스 브로디-생스터): 영국식 억양과 침착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 민호(이기홍): 미로 전체 구조를 파악한 유일한 인물로, 위기 상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 갤리(윌 폴터): 악역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입니다.
배우들의 이름 유래가 모두 역사적 위인에서 왔다는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토마스는 토마스 에디슨, 민호는 이름 자체로, 뉴트는 아이작 뉴턴, 척은 찰스 다윈, 갤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에서 각각 따왔습니다. 위키드가 소년들에게 과학자의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실험 대상으로서의 위치를 암시하는 것 같아 소름 돋았습니다. 결말은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속편을 예고하는 암시만 쌓인 채 이야기가 끝나는 구조라 처음 봤을 때 허무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시리즈의 시작점이 되는 영화로는 손색이 없었고, 미스터리한 세계관을 조금씩 풀어가는 방식이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2편과 3편은 긴장감은 있었지만 결말이 허무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1편만큼은 기억할 만한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