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TV를 켰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있는데, 그게 바로 1999년작 '미라'였습니다. 처음엔 무서운 영화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동생과 저 모두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인지 모험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는 북미에서 약 1억 5천만 달러, 전 세계 합산 4억 1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1999년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가 됐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국내에서도 11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외화 흥행 1위를 기록했는데, 매트릭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식스센스 같은 경쟁작들을 제치고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도 레이철 와이즈의 미모는 잊기 어렵습니다. 이 글은 1999년도에 개봉한 미라 영화의 줄거리, 연출, 인물 심리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파라오의 저주, 그 시작이 얼마나 강렬했나
이 영화는 공포영화 설정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욕망, 그 안에 숨어있는 사랑과 집착, 탐욕,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초자연적인 저주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저주를 깨운 것도 인간이었다는 점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이집트'라는 배경 자체가 낯설고 신비로웠습니다. 어릴 때는 파라오의 저주나 외계인처럼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고,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이 영화는 딱 맞는 소재를 골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기원전 1290년, 세티 1세 시대의 이집트에서 시작됩니다. 대사제 이모텝과 파라오의 후궁 아낙수나문의 금지된 사랑이 발각되고, 아낙수나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이모텝은 고대 이집트 신화에 있는 금단의 주술을 이용해 그녀를 되살리려 합니다. 이 주술은 영화 속에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핵심 도구로 등장합니다. 결국 이모텝은 산 채로 석관에 봉인되어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갇히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 형벌은 존재 자체를 영원한 고통 속에 묶습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모텝이라는 인물에 비극적인 깊이가 생깁니다. 왜 저주가 시작됐는지 납득이 가도록 설명된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집트와 파라오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정도로 도입부의 세계관 설정이 탄탄했습니다. 이집트 신화와 고대 이집트 문명을 알게 되면서 피라미드에 가보는 것이 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집트 박물관이 개장되었다는 소식에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연출 방식, 공포와 모험의 균형이 절묘했던 이유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최근에 다시 봤을 때도 전율이 흘렀습니다. 특히 모래폭풍 장면과 풍뎅이가 피부 속을 파고드는 장면은 어릴 때는 무서웠는데, 지금은 저 시대에 어떻게 저 장면을 구현했나 싶었습니다. 로저 이버트가 4점 만점에 3점을 주며 호평한 것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출처: RogerEbert.com). 감독 스티븐 소머즈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공포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여러 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바로 다음 장면에 액션이나 유머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관객이 숨 돌릴 틈을 주면서도 긴장을 유지하는 편집과 연출이 탁월합니다. 이를 영화 이론에서는 장르 하이브리드(Genre Hybrid)라고 부릅니다. 장르 하이브리드란 두 가지 이상의 장르적 문법을 의도적으로 혼합하여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관람 경험을 만드는 연출 방식입니다. 시각 효과 면에서도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모텝이 모래폭풍 속에서 거대한 얼굴을 형성하는 컴퓨터 그래픽 장면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옵니다. 1999년도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 동생은 이 영화를 수십 번 봤는데, 볼 때마다 '이 영화 정말 재미있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음악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제리 골드스미스가 작곡한 영화 음악은 라이트모티프(Leitmotif)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라이트모티프란 특정 인물이나 감정, 상황을 대표하는 주제 선율을 반복하고 변주하여 서사의 흐름을 음악으로 강화하는 기법입니다. 이모텝의 테마가 영화 내내 변형되며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이 달라지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로서 성공한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장르 하이브리드 구조로 공포, 액션, 코미디, 로맨스를 균형 있게 배치
- ILM의 CG 기술을 활용한 시각적 볼거리 확보
- 라이트모티프 기법 음악으로 서사 몰입도 강화
- 빠른 편집으로 지루함 없이 사건을 연속적으로 배치
1999년도 미라 영화 속 인물 심리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모텝이라는 인물의 심리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무서운 미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랑이 집착으로 변한 인물이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고 아낙수나문을 되살리려는 모습은 비극적인 동시에 섬뜩합니다. 에블린(이비) 역시 단순한 히로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집트 학문 전공의 박물관 사서로, 고대 유물과 문자에 대한 지식으로 위기를 돌파합니다. 영화 속에서 에블린의 전문성이 줄거리 해결의 핵심 열쇠가 됩니다. 그녀의 호기심이 봉인을 해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지식에 대한 탐구심이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가 담겨 있습니다. 릭 오코넬은 처음부터 영웅으로 설계된 인물이 아닙니다. 외인부대 출신의 생존 본능이 강한 현실적인 인물이고, 그가 점점 에블린과 동료를 위해 위험에 맞서면서 자연스럽게 영웅으로 성장합니다. 이 성장 서사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힘이었습니다. 조나단은 탐욕과 코미디를 담당하는 인물입니다. 제가 특히 기억하는 장면은 위기 상황에서 군중 속에 섞여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엉뚱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해냅니다. 웃긴 장면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나중에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2017년작 미라와 비교하게 되는데, 제가 느끼기에 옛날 영화가 완성도 면에서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은, 1999년작 미라는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줄거리, 액션, 인물의 심리, 개연성 어느 것 하나 허술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TV에서 미라가 나오면 저뿐만 아니라 제 동생도 채널을 고정합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여러 번 봐도 재미있는 오락 영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