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좀비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 제 주변에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 저도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좀비 영화를 보면 사람의 생존 본능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런 장르의 영화가 인간의 본성과 악한 면을 보여주는 것에 의의를 두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은데, 이 영화는 한국형 신파가 더 많이 느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본 부산행에 대해서 한국형 좀비물의 흥행, 인간의 생존 본능에 대해서 비평하고 분석해 보겠습니다.
부산행 분석,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와 흥행의 의미
부산행은 제 기억상 처음 나온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2016년 개봉 당시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해외 박스오피스에서도 4,5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배급사가 공식 발표했습니다. 대만에서만 1,130만 달러, 홍콩에서 950만 달러를 기록했으니 아시아 전역에서 높은 성과를 낸 셈입니다. 그전에도 한국에 좀비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포칼립스(apocalypse), 즉 문명 붕괴를 전제로 한 대규모 좀비 재난물은 이 영화가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아포칼립스란 기존의 사회 질서와 도덕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부산행은 그 설정을 KTX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압축해 넣었고, 밀폐되고 한정적인 공간이 관객에게 더 강한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초연됐습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도 96%를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서구의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성공한 이후, 한국에서 좀비를 주제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줄줄이 나왔습니다. 만약 부산행이 없었다면 조선시대 좀비를 다룬 드라마인 '킹덤'도, 그 외 다른 한국형 좀비 장르 매체도 한참 늦게 등장했을지 모릅니다. 이 영화는 한국형 좀비 장르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했으며, 비영어권 영화로서 이례적인 세계적 흥행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생존 본능
제가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보기 괴로웠던 것은 '용석'이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좀비 앞에 떠밀고, 기장을 밀쳐 혼자 기차에 오릅니다. 혼자만 살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자처하는 인물은 이런 장르 매체물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인물은 극한의 공포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 보존 본능(self-preservation instinct)에 지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자기 보존 본능이란 생존 위협 앞에서 도덕적 판단보다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심리적 반응을 말합니다. 반면 마동석 배우가 연기한 '상화'는 '용석'과 정반대 되는 인물입니다. 상화의 첫인상은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임산부 아내를 다정하게 챙기고, 낯선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 좀비 무리를 막아내는 의리와 책임감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가 결국 여러 좀비를 몸으로 막다 감염되는 장면에서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그가 지키려 했던 아내는 끝내 살아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옆에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영웅'은 없다는 점이 씁쓸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용석'외에도 패닉에 빠진 여러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집단 공황(mass panic) 상태라고 분석합니다. 집단 공황이란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이성적 판단 능력을 잃고 즉각적인 감정 반응에 따라 행동하는 집단적 심리 현상입니다. 실제로 재난 심리를 연구한 다수의 사례에 따르면,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과 자기 보존을 위한 이기적 행동을 동시에 보인다고 합니다. 부산행의 승객들이 정확히 그렇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영화 속 좀비는 빠르게 달리고 청각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시야가 어두워지면 바로 앞의 상대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 설정은 인간도 공포 속에서 눈앞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메타포(metaphor)로 읽힙니다. 메타포란 어떤 개념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비평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의 평화로운 기차 풍경에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기차에 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딸과 어색하게 앉아 있는 아버지, 만삭의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중장년 자매 등등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 상태에서 그들의 일상을 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더 안쓰럽고 조마조마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의 신파적 감성이 과하다는 비판을 합니다. 하지만 해외 관객들의 감상평은 오히려 이 점이 신선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할리우드 좀비 영화에서 죽어가는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보통 영웅적인 대사라면, 부산행의 주인공인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는 '빨리 도망쳐'입니다. 그게 더 현실적이어서 슬프다는 평입니다.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를 매우 압축적으로 구성했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영화 속 인물이 사건을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석우는 냉정한 펀드 매니저에서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아버지로 변합니다. 이 변화가 설득력을 갖는 건, 중간 과정이 충분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솔직히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조금만 소리를 내도 좀비가 몰려오던 터널 속에서, 딸과 임산부가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장면 말입니다. 개연성 면에서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그들의 맞은편에 있던 군인이 두 사람의 실루엣을 보고 좀비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넣은 요소라도 말입니다. 영화 전문 매체와 학술 연구들은 부산행이 장르적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뒤집어서 지루함을 피했다고 분석합니다. 클리셰란 장르 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관객이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된 전형적인 설정을 말합니다. 부산행은 이를 따르기도 하고, 정반대로 배치하기도 하면서 뻔한 듯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영화가 됐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