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18년 개봉한 '블랙 팬서'입니다. 그 정도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히어로 영화는 과거 영화계에서 흔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뿐만이 아니라, 정체성과 책임, 전통과 변화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블랙 팬서 1편을 보고 와칸다 세계관, 악역을 중심으로 후기를 작성하고, 전 세계 평가를 정리하겠습니다.
와칸다 세계관
블랙 팬서를 보면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와칸다 세계관'이었습니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다른 마블 영화와 달리, 와칸다는 가상의 국가입니다. 아프리카 부족 사회의 전통적인 색채와 문양, 의례가 첨단 기술과 공존하는 점이 이색적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세계관은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아프로퓨처리즘이란 아프리카의 전통문화와 미래 기술 문명을 결합하는 문화적 흐름을 의미합니다. 기존 SF가 서구 중심의 미래를 상상해 왔다면, 아프로퓨처리즘은 아프리카적 뿌리를 가진 미래를 그려냅니다. 와칸다는 이를 가장 성공적으로 시각화한 사례로 꼽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설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땅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마블 세계관에서 와칸다는 가장 부유한 국가로 등장합니다. 또한, 가장 강한 금속인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인류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나라로 등장합니다. 와칸다의 풍경과 각 부족마다 다른 문화와 복장, 체구도 눈에 띄었습니다. 부족별로 개성이 달라서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의상 디자이너 루스 카터가 구현한 의상들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를 상징하는 적색, 녹색, 흑색의 색감 배치가 주요 인물 의상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범아프리카주의란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이 공통된 정체성과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사상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영화에 부산이 등장한 것이 흥행 요소였습니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이 등장했는데, 배우들이 부산 사투리를 쓰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처음엔 발음 때문에 바로 못 알아들었는데,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가 등장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재미있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사이버펑크 분위기라는 걸 그 장면에서 느꼈습니다. 예전 홍콩에 가졌던 막연한 분위기처럼요.
킬몽거라는 악역이 특별한 이유
MCU 악역 중 '킬몽거'를 손에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이유에 동의합니다. 그는 다른 악역처럼 세계 정복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의 분노는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킬몽거의 본명은 '은자다카'입니다. 그의 아버지 은조부는 와칸다 비밀 요원이었지만, 세계의 억압받는 흑인들을 돕기 위해 비브라늄 기술을 외부로 유출하려 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전왕 티차카가 직접 그를 처단했고, 어린 킬몽거는 혼자 남겨졌습니다. 와칸다는 그를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이 설정은 킬몽거를 비극적 인물로 만듭니다. 그는 미국 빈민가에서 자라며 흑인 공동체가 겪는 차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와칸다가 가진 힘으로 그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해방이 아니라 지배로, 협력이 아니라 혁명으로 나아가려 했으니까요. 킬몽거의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옳다는 점이 이 영화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의 대립 구도가 티찰라와 킬몽거의 관계에 투영되어 있다는 해석이 있고, 저도 그 시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 말미에 티찰라가 킬몽거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와칸다의 고립주의를 끝내기로 결정한다는 점이 그 방증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킬몽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거절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죽음을 선택합니다. 패배한 악당의 최후라기보다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의 마지막처럼 보였습니다. 영화를 만든 쪽에서도 이 장면의 대사를 꼭 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킬몽거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반면, 이야기의 구조 자체는 다소 전형적인 영웅 군주 서사를 따릅니다. 정당한 후계자가 위기를 맞고, 조력자의 도움과 깨달음을 통해 찬탈자를 물리친다는 흐름은 익숙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라이온 킹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그를 포함한 조상의 지혜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는 설정이 거의 같습니다.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 안에서 인종, 역사, 책임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블랙 팬서 1편 후기와 평가
블랙 팬서를 다시 볼 때마다 '채드윅 보스만'이 그리워집니다. 그가 연기한 티찰라는 완벽한 영웅이었습니다. 위엄이 있으면서도 친절하고, 속이 깊으면서도 자신만의 고뇌가 있는 왕. 제가 보기에 그는 완벽한 후계자였지만, 영화는 그 후계자에게 끊임없이 위기를 줍니다. 그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채드윅 보스만은 촬영 당시 이미 대장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1편을 다시 보면 화면 속 그가 다르게 보입니다. 2022년 개봉한 블랙 팬서 2편은 그에 대한 추모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편은 수중 장면에서 흐르던 몽환적인 음악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로튼토마토 기준 신선도 96%를 기록하며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평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슈퍼히어로 영화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의상상, 음악상, 미술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이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낸 문화적 영향력이 그만큼 실질적이었다는 뜻입니다. 마블 영화 중에서 진지함과 재미가 균형을 이룬 작품은 드뭅니다. 이색적인 문화와 분위기,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독특한 액션이 다음 블랙 팬서 영화를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