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Db Top 250에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4년 개봉 당시 '쇼생크 탈출'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본 것 중 최고의 영화'로 꼽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마지막 장면을 알고 있어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 왜 이 영화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많이 회자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쇼생크 탈출 영화의 철학, 심리학적으로 본 영화 속 제도화, 탈출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쇼생크 탈출, 희망의 철학
저는 이미 쇼생크 탈출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두 팔을 벌리며 비를 맞는 장면과 결말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영화가 지루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영화를 실제로 봤을 때 감동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서사와 과정을 보고 나니, 비를 맞으며 기쁨을 누리는 마지막 장면이 왜 명장면으로 꼽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이 수감 중이면서도 그 안에서 매일 은행 업무 관련 조언을 나눠주고, 도서관을 확장하고, 오페라 음악을 틀어주던 장면들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즉 '나는 할 수 있다'는 내면의 확신을 말합니다. 앤디는 극단적으로 억압된 공간에서도 이 자기 효능감을 잃지 않았고, 그 믿음이 16년에 걸친 탈출 계획을 완성시킨 동력이 되었습니다. 제가 우울감이 심했던 시기를 떠올리면, 그때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억지로라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행동들을 매일 해나갔습니다. 현실 파악을 했지만, 그 상황에 체념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작은 영향력을 만들고, 자신이 좋아했던 취미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자유의 감각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습니다. 저는 이 꾸준함이 희망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장면들이 제게는 쇼생크 탈출 속 명대사보다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제도화, 자유를 두려워한 이유
영화가 희망적인 메시지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레드'라는 인물 때문입니다. 그는 40년 가까이 쇼생크에서 살면서 이미 자유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가 반복적으로 가석방에 실패하는 장면은 그의 내면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신호였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라고 부릅니다. 제도화란 오랜 기간 특정 환경에 갇혀 살면서 그 환경 밖의 삶을 자발적으로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50년을 복역하고 가석방된 브룩스가 결국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장면은, 이 제도화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보여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장기 수감자일수록 외부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데 훨씬 큰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미국 국립 사법 연구소 NIJ). 이는 인간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구조화된 환경이 뇌의 의사결정 방식 자체를 바꿔버리기 때문입니다. 레드가 가석방 심사에서 반복적으로 탈락하는 이유를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그는 매번 가석방 위원회 앞에서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걸 입증해야 했는데, 정작 본인이 그걸 믿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마지막 가석방 심사에서 레드가 '내 가석방 승인 여부는 상관없다'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주인공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존재를 다시 긍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누군가를 정말 변화시키는 건 설득이 아니라 옆에서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앤디는 레드에게 한 번도 '희망을 가지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주인공 곁에서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변화했습니다.
탈출의 의미
영화에서 앤디가 탈출에 사용한 도구는 손바닥만 한 암석망치였습니다. 그걸로 16년에 걸쳐 벽을 뚫습니다. 현실에서도 실제 탈옥 사례들을 보면 숟가락, 성냥, 손톱줄 같은 소도구로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시도한 경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앤디의 방법이 허황된 설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통과한 하수구는 서사적 상징으로 읽힙니다.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 구조로 해석하면서 의미를 찾는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앤디가 더럽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빗속으로 나오는 장면은 이 관점에서 보면 '오염된 과거에서 새로운 자아로의 이행'을 시각화한 장면입니다. 즉, 주인공의 탈출은 존재의 재탄생을 의미합니다. 주인공은 그 순간이 오기까지 16년이라는 시간을 단 하루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이 정도의 영화가 지금까지 하나의 상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작품이라면 영화사에서 뒤늦게라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2015년에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 필름 레지스트리(National Film Registry)에 영구 보존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Library of Congress). 뒤늦은 인정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쇼생크 탈출은 결말을 알고 봐도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 몇 안 되는 영화입니다. 지금 어떤 반복적인 일상 안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면, 이 영화를 한 번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 스티븐 킹 원작 중편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