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저는 이 영화를 꼽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음악이 영화에서 하는 역할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시간을 돌아가는 장치'를 통해서 청춘의 선택과 후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OST, 연출, 철학적 메시지가 하나로 맞물려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OST, 줄거리, 평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OST를 이용한 감정선
이 영화의 OST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OST는 '변하지 않는 것'과 '가넷'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오쿠 하나코가 작사, 작곡,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맡았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남자 주인공인 치아키의 시점에서, '가넷'은 마코토의 시점에서 쓰인 곡이라는 점을 알고 나서 들으면 더욱 특별한 감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음악 분야에서는 이런 구성 방식을 라이트모티프(Leitmotif)라고 부릅니다. 라이트모티프란 특정 인물이나 감정 상태에 반복적으로 연결되는 음악적 주제로, 관객이 의식하지 못한 채로 감정을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이 영화에서 '변하지 않는 것' 노래가 흐를 때마다 치아키의 감정이 더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여자 주인공이 처음으로 시간을 회귀하는 장면에 삽입된 음악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제1변주입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바흐가 작곡한 피아노 반복 변주곡으로, 같은 화성 구조 위에서 끊임없이 다른 선율이 얹히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 노래는 같은 시간을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마코토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음악적 구조가 마코토의 상황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입니다. OST 전체의 피아노 연주는 미노 하루키가 담당했고, 영화음악 작곡은 요시다 키요시가 맡았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때 마코토가 과거로 돌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저는 음악이 관객의 마음을 더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 속 장면과 노래가 주는 벅찬 감동이 맞물렸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줄거리
이 영화의 원작은 츠츠이 야스타카의 1965년 소설이지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원작 사건에서 약 20년 후를 배경으로 삼아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원작자가 '이 작품은 내 작품의 정통 속편이다'라고 공식 인정하고, 저작권까지 호소다 감독에게 양도한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입니다. 즉, 이 영화는 그저 2차 창작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여고생 마코토가 우연히 타임리프 능력을 얻어 일상의 실수를 되돌리다가, 선택의 무게를 직면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코토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타임리프(Time Leap), 즉 도약해서 이전 시간으로 돌아가는 능력을 손에 넣자마자 시험을 피하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더 먹거나, 친구와의 대화 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능력을 남용합니다. 이 능력을 쓸 때마다 횟수가 줄어든다는 사실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마코토는 영웅과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동시에 태평하고,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코토가 이 능력의 효과를 간절히 바랄 때,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집니다. 친구 코스케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언덕길을 달리다 열차와 충돌할 위기에 처하는 순간입니다. 남은 횟수를 다른 곳에 이미 써버린 마코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 위기를 막지 못합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숨을 멈추고 영화에 집중했습니다. 마코토는 친구를 바라보며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처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야기 구조를 살펴보면, 이 영화는 '발단, 전개, 위기, 전환, 결말'이라는 고전적인 5단 구성보다 훨씬 촘촘하게 감정선을 배치합니다. 영화는 타임리프가 반복될수록 사건보다 감정의 밀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평가 : 이 영화가 남긴 것
치아키를 두고 많은 분들이 '이상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꼽습니다. 저도 한동안 치아키보다 더 멋있게 느껴지는 애니메이션 남자 주인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치아키의 매력은 마지막 장면에서 터져 나왔지만, 그가 '과거'로 온 이유도 매력적입니다. 그는 아득히 먼 미래에서 과거로 온 사람입니다. 그 결심을 내린 이유는 그저 미래에 소실된 그림 한 점을 직접 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 이유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기록으로만 남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치아키가 마코토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치아키의 표정 또한 머리카락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연출을 통해 두 사람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상상하게 됐고, 더욱 여운이 남았습니다. 저는 여름만 되면 이 영화가 생각납니다. 하복, 방과 후 친구와 놀기로 약속을 잡은 것, 매미 소리, 파란 하늘 등등 청춘이었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치아키가 마코토에게 고백하는 장면도 설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마치 저의 어릴 때 모습 같았습니다. 저 또한 좋아하던 친구가 전학 가기 직전에야 겨우 고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관계가 깨질까 봐 혼자만 오래 짝사랑하다가, 마지막이 다가와서야 용기를 낸 그 마음이 이해가 됐습니다. 마코토가 언젠가 치아키를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06~2007년 국내 일본 애니메이션 개봉작 중 이 작품은 가장 높은 평균 관람객 만족도를 기록한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또한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Agency for Cultural Affairs Media Arts Festival)에서도 애니메이션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문화청 미디어예술제란 일본 정부 기관인 문화청이 주관하는 미디어 예술 분야의 권위 있는 시상 행사로, 매년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예술 분야의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