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봉했던 영화 위키드를 보고 나서 문득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랐습니다. 위키드 2편에 도로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아, 맞다. 이런 이야기였지' 하고 오래된 기억이 살아났거든요. 저는 이 영화를 생각하면 주제곡이 먼저 떠오릅니다. 'Over the Rainbow'라는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와 목소리가 바로 떠오를 만큼, 노래 하나가 영화 전체를 대표한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겉모습 뒤에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과 촬영 기법, 시대상에 따라 영화가 비유했던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추가로 당시에는 몰랐던 배우들의 뒷이야기와 인권으로 인한 문제도 살짝 다루어 보겠습니다.
영화 주제곡, Over the Rainbow
솔직히 저는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릴 때 줄거리보다 음악이 먼저 생각납니다. 'Over the Rainbow'는 제목만 들어도 그 도입부 멜로디와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의 목소리가 같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OST가 영화를 각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곡은 '해럴드 알렌(Harold Arlen)'이 작곡한 곡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Best Original Song)을 수상했습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미국 영화 최고의 노래 1위에도 올랐으며, 2004년에는 AFI가 선정한 역대 영화 음악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출처: AFI, American Film Institute). 즉, 이 노래는 그저 인기 있는 영화 삽입곡이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의 유산으로 공인된 셈입니다. 영화에는 Over the Rainbow 외에도 각 인물의 소망을 표현한 노래들이 등장합니다. 허수아비의 'If I Only Had a Brain', 양철 나무꾼의 'If I Only Had a Heart', 겁쟁이 사자의 'If I Only Had the Nerve'가 대표적입니다. 이 곡들은 각 인물들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여기서 이른바 '라이트모티프(Leitmotif) 기법'이 활용됩니다. 라이트모티프란 특정 인물이나 감정을 대표하는 선율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작곡 방식으로, 관객이 음악만 들어도 어떤 인물 혹은 상황인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뮤지컬 연출 방식이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 메리 포핀스, 그리고 최근의 라라랜드나 위키드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영화의 주제곡인 Over the Rainbow는 AFI 선정 미국 영화 음악 역대 1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습니다.
- 라이트모티프 기법으로 각 인물의 감정과 주제를 음악으로 전달합니다.
- 주디 갈란드의 가창력이 이 영화를 세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1930년대 영화라고 믿기 어려운 촬영 기법의 비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놀랐던 건 색감과 무대였습니다. 에메랄드 시티의 초록빛과 루비 구두의 붉은색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선명해서, 이게 정말 1939년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연출은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입니다. 캔자스를 배경으로 한 도입부는 세피아 톤에 가까운 흑백으로 표현되고, 도로시가 오즈의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 화면이 테크니컬러(Technicolor)로 변환됩니다. '테크니컬러'란 세 가지 색상 필름을 동시에 촬영해 합성하는 방식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비용이 높고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컬러 촬영 공정을 말합니다. 이 장면은 현실과 판타지, 일상과 꿈을 대비시키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당시 제작비는 277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를 위해 미니어처 기법, 이중노출 기법, 특수분장 등 당시 가능한 거의 모든 촬영 기술이 동원됐습니다. 이중노출 기법이란 하나의 필름에 두 번 노출시켜 두 영상을 겹쳐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오즈의 거대한 녹색 얼굴이나 글린다가 비눗방울 속에서 등장하는 장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오리바람 장면은 35피트짜리 흰 스타킹을 미니어처 세트 위에서 휘둘러 만들어냈고, 집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은 필름을 뒤집어 재생하는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이 영화는 초반에 등장하는 구름을 제외하면 모두 세트장에서 촬영됐습니다. 이 무대와 배경이 동화적인 세계관과 어울려서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89년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국 국립영화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에 최초 등재된 25편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Library of Congress),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뜻하는 시대적 비유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설정이 맞물리는 것이었습니다. 1939년은 미국이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여파에서 벗어나려 하던 시기였고,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금본위제란 화폐의 가치를 금과 연동시키는 통화제도로, 당시 미국에서는 이를 유지하느냐 폐기하느냐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컸습니다. 이 맥락에서 영화 속 설정을 보면 희망적인 성장기가 다르게 보입니다. 도로시 일행이 따라가는 노란 벽돌길은 황금(Gold)을 상징하고, 초록빛 달러를 연상시키는 에메랄드 시티는 돈과 권력이 집중된 수도를 은유합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막강한 권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커튼 뒤에 숨어 목소리를 변조하는 평범한 노인입니다. 그는 그 시대 사람들을 지배하던 정치 권력자의 은유로도 읽힙니다.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도 당시 계층을 반영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고 믿는 허수아비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층을 비유합니다. 심장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양철 나무꾼은 반복 노동에 지친 산업 노동자를, 용기를 잃은 사자는 목소리를 낼 힘을 잃은 농민 계층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각자의 결핍을 안고서도 어린 도로시를 돕기 위해 함께 길을 걷는 장면이 저는 우정 이야기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판타지와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것도 이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당시처럼 사회적 불안이 높던 시기에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동화적 설정과 시청각 자료 안에 비판을 녹여내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면서도, 그 현실을 투영하는 이중 구조가 이 영화를 오락물 이상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이 영화의 어두운 이면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오래된 명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배우들이 실제로 어떤 환경에서 촬영했는지 알고 나서는 솔직히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이 시절 할리우드는 배우를 사람이 아닌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처럼 다루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아역 배우와 여성 배우에 대한 배우인권(Performer's Rights) 개념 자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로시와 서쪽 마녀를 연기해던 배우들의 관계입니다. 극 중에서 가장 무섭고 잔인한 악역, 서쪽 마녀를 연기했던 마거릿 해밀턴은 도로시 역할을 했던 주디 갈란드에게 현장에서 유일하게 친절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 역할과 실제 사람이 완전히 반대였던 셈이죠. 이 이야기를 알고 나서 여성 간의 연대와 오해받는 존재에 대한 시선이 현대에 와서야 제대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위키드를 계기로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찾아본 건 잘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오래된 뮤지컬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들여다볼수록 이야기 하나하나에 그 시대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아름다운 화면 뒤에 남겨진 시대적 비유와 배우인권 문제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이야기를 알고 나서 보는 이 영화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궁금하다면 영화 자체를 보는 것도 좋지만, 주디 갈란드의 삶을 다룬 2019년 전기 영화 주디(Judy)를 함께 보는 것도 권합니다. 이 영화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