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처음에 '원스(Once)'를 '노래가 특징인 잔잔한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을이 되면 매년 이 영화가 떠오를 만큼, 제 마음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버렸습니다. 13만 유로, 단 17일 촬영, 비전문 배우 등 원스는 저예산 영화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 영화'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명작입니다. 이 글은 원스의 OST를 분석하고, 저예산 영화, 음악 치유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OST 분석, 음악이 서사를 이끄는 방식
보통 영화를 만들 때는 각본을 먼저 쓰고 거기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붙입니다. 하지만 '원스'는 반대의 순서로 만들었습니다.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가 먼저 곡을 만들었고, 존 카니 감독은 그 노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이 방식을 영화 제작 용어로 말하자면 '뮤직 드리븐 내러티브(Music-Driven Narrative)'에 가깝습니다. 뮤직 드리븐 내러티브란 음악이 서사 자체를 추진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입니다. 그 결과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악기점에서 남녀 두 사람이 부르는 'Falling Slowly'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합주를 하는 이 장면은 연애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습니다.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데도, 첫 소절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습니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봤을 때 모두 '아, 이 두 사람이 서로 끌리고 있구나'하고 알아채게 됩니다. 음악이 대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원스'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OST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Falling Slowly: 서로를 처음 이해하는 순간, 조심스럽고 서툰 연결
- When Your Mind's Made Up: 포기와 결심 사이의 팽팽한 긴장
- Leave: 떠나야 하는 사람의 복잡하고 아픈 내면
- Lies: 관계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상실감
이 곡들이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른 것은 각 노래가 영화 속 인물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담아낸 독립적인 서사였기 때문입니다(출처: Grammy.com). 저는 이 영화를 보자마자 OST를 따로 찾아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영화 속 장면과 이야기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만큼 음악이 곧 줄거리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저예산 영화, 원스
'원스'는 아일랜드 영화위원회의 지원금으로 제작된 인디 필름입니다. 제작비는 13만 유로이며, 촬영 기간은 17일이 전부입니다. 촬영에 사용된 장비는 6mm 핸드헬드 캠코더였습니다. 이 영화를 촬영한 사람들은 더블린 거리에서 숨어서 망원으로 촬영했고, 그 덕분에 길거리 행인들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담겼습니다. 삼각대 없이 촬영자가 직접 들고 찍어서 영상에 흔들림과 거친 질감을 주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불안정함이 오히려 인물의 감정적 흔들림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디렉트 사운드(Direct Sound)'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렉트 사운드란 후반 작업에서 음향을 덧입히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로 녹음된 소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로 부른 노래가 편집 없이 영상에 실리면서, 관객은 무대 공연이 아닌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른 음악 영화에서도 원스의 제작 방식은 흔하게 보이지 않는 방식입니다. 많은 음악 영화들이 화려한 영상과 정제된 소리를 무기로 내세우는데, '원스'는 그 반대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서 더 큰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와 더블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미국에서 2 개관 개봉으로 시작해 126 개관으로 확대됐습니다. 저예산 독립 영화가 이렇게 퍼져나간 사례는 영화 산업에서도 꽤 보기 드문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Sundance Institute).
음악 치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가을마다 이 영화를 떠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뭔가 씁쓸한 동시에 따뜻한 감정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은 존 카니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구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는 결말에 남녀 주인공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맺어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공식을 거부합니다. 남자는 전 여자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여자는 체코에 있는 남편을 다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만나기 전보다 훨씬 앞으로 나아가 있습니다. 나이가 좀 더 들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처음 봤을 때와 결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는 '왜 이렇게 끝나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끝나는 관계가 오히려 더 멋지다는 걸 압니다. 헤어졌어도, 함께하지 않더라도 좋은 관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이 영화가 처음으로 납득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마지막 여자의 체코어 대사였습니다. '밀루유 떼베(Miluju tebe)'는 체코어로 '너를 사랑해'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그 말의 뜻을 끝내 알려주지 않고 미소만 짓습니다. 그것이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과 서사를 전달합니다. 이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의 철학을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이후 2012년 토니상 작품상을 포함해 8개 부문을 수상한 뮤지컬로도 만들어졌고, 2025년 국내에서도 공연되었습니다. 원작 영화가 가진 감정의 밀도가 무대 위에서도 온전히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감정 구조가 그만큼 단단했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인 줄거리가 없어도 명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