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가 피터팬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출근할 때, 내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계산하게 될 때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동화 속 인물의 심리가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1953년에 개봉한 피터팬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피터팬 증후군, 웬디와의 심리, 후크 선장에 대해서 분석하겠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본 피터팬 증후군
피터팬 신드롬, 즉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피터팬 증후군이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책임과 현실을 회피하고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상태에 머무르려는 심리 성향을 뜻합니다. 1983년 심리학자 댄 카일리(Dan Kiley)가 처음 개념화한 용어로, 임상 심리 분야에서도 꾸준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이 그저 '철없는 어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안정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정체된 상태를 선택하게 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건강한 선택이냐고 물으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학습 단계'이기 때문에 어른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애니메이션 속 피터팬은 내내 타인에게 의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피터팬은 '팅커벨'과 함께 다니는데, 저는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아이들 사이에서 보이는 관계 같았습니다. 팅커벨이 심술을 부리는 모습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할 때 질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화해를 할 때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피터팬을 이야기할 때 팅커벨을 빼놓기가 어렵습니다. 팅커벨은 디즈니의 상징적인 마스코트 캐릭터로, 디즈니 영화 오프닝에서 신데렐라 성 위를 가로질러 나는 존재입니다. 제가 미국 올랜도 디즈니 월드 매직킹덤을 방문했을 때, 저녁 불꽃놀이 쇼가 시작되면서 실제로 와이어를 타고 신데렐라 성 꼭대기에서 날아 내려오는 팅커벨을 본 적 있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피터팬처럼 어린아이가 돼서 그냥 놀이동산 안에서만 살고 싶었습니다. 1953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네버랜드는 시간이 멈추고 책임이 없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잘 보면 그곳은 발전도, 변화도 없는 정체된 세계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 공허한 공간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성장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실존주의 심리학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일시적 안도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아실현을 막는다고 지적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피터팬과 웬디
피터팬의 등장인물들을 융 심리학(Jungian psychology)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융 심리학이란 스위스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발전시킨 분석 심리학 이론입니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을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등 여러 체계를 구분해서 분석했습니다. 융이 말한 그림자(shadow)란 자신이 외면하거나 억압한 내면의 욕구와 감정을 의미합니다. 피터팬에도 그림자가 등장합니다. '그림자'가 별도의 자아를 갖는 점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피터팬이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리는 장면이 애니메이션 초반에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융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찢어진 그림자를 다시 꿰매는 행위가 자아 통합, 즉 자신의 억압된 부분을 다시 받아들이는 상징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웬디는 융이 말한 아니마(anima) 개념에 가깝습니다. 아니마란 남성의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여성적 특성을 의미하며, 공감, 돌봄, 안정 같은 요소와 연결됩니다. 웬디는 네버랜드의 혼돈 속에서도 현실적 질서를 유지하려 하며, 결국 현실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성장을 거부하는 피터팬과 정반대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죠. 저는 웬디의 선택이 '현명한 포기'라고 봅니다. 환상과 이상적인 세계가 아름다울수록, 현실로 돌아오는 결단이 더 어렵고 더 성숙한 행위가 되는 것 아닐까요.
후크 선장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후크 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후크 선장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악당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사실 원작에서의 후크 선장은 상당히 신사적이고 비극적인 인물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입체성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다소 평탄하게 처리된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후크 선장은 상징적으로 읽힐 여지가 충분합니다. 시계를 삼킨 악어가 그를 끊임없이 쫓는 설정은 크로노포비아(Chronophobia)와 연결됩니다. 크로노포비아란 시간의 흐름에 대한 병적인 공포 또는 불안을 뜻하는 개념입니다. 즉, 나이를 드는 것에 대한 회피 심리가 극단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흥미로운 제작 비하인드가 있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후크 선장과 웬디 아버지인 조지 달링의 성우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두 인물이 '권위'와 '규칙'이라는 공통된 상징을 공유한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이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융 심리학의 페르소나(persona) 개념으로 보면, 그는 사회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가면을 지나치게 강하게 붙잡고 있는 인물입니다. 페르소나란 사회에서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자신의 외적 이미지를 의미합니다. 그 가면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곧 악어에 대한 공포로 치환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피터팬 애니메이션은 성장을 거부한 자와 시간에 쫓기는 자, 이 두 대립을 보여줍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모험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