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은 제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 기대를 잔뜩 안고 봤는데, 저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재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했거든요.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곱씹다 보니 이 영화가 왜 오래 기억에 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헤어질 결심 속 심리 구조, 수상 내역, 해외 반응에 대해서 작성하겠습니다.
헤어질 결심, 심리 구조
헤어질 결심은 사랑과 집착 사이를 파고듭니다. 제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자기기만(self-deception)'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자기기만이란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상황을 재해석하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그는 용의자 송서래를 감시하면서도 그것을 '직무'로 합리화하고, 감정이 자라나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자기기만이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처음엔 분석의 대상이었던 서래가 연민의 대상이 되고, 연민은 관심으로, 관심은 감정으로 변해갑니다. 좋아하는 감정은 스스로 눈치채기 어렵게 생길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미 그 사람이 마음속 중심에 들어와 있는 거죠. 영화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구원 판타지(savior fantasy)'도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것은 상대를 보호하거나 구해주고 싶은 욕구 뒤에 자신의 결핍이나 공허를 채우려는 심리가 숨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군가를 '구원'해주고 싶은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준이 서래에게 끌리는 방식이 딱 이런 구조입니다. 그는 서래를 이해하고 지키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서래를 통해 해소하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해준이 서래에게 하는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말입니다. 저도 좋아하던 사람 때문에 이전의 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어서 이 장면이 유독 와닿았습니다. 감정이 나를 재조립해서 상대 앞에 세워놓는 것 같은 그 간절하고 절실한 상태, 그런데 그 사랑이 닿지 않을 때의 무너지는 마음 등등이 그 대사 하나에 담겨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사랑은 상대의 선택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집착은 반대로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하고,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려 합니다.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 때로는 더 윤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수상 내역, 이 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은 이유
저는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그 소식을 보며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상은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상으로, 영화의 연출 완성도를 국제 심사위원단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감독으로서 칸 주요 부문 수상은 이번이 두 번째였고, 박찬욱 감독 개인으로서는 첫 감독상 수상이었습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이 수상은 감독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 영화가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이자 미학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심사위원단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와 미장센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배우, 조명, 색채, 구도 등 시각적 요소 전체를 설계하는 연출 개념으로, 박찬욱 감독이 특히 강점을 보이는 분야입니다. 영화는 연출과 편집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미장센을 굉장히 잘 사용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색채와 명암, 조명, 구도를 편집하여 아름다움과 인물의 심리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인물의 감정 상태가 대사 없이도 화면의 색감과 거리감으로 전달되는 장면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국 쪽 시상식 성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영국 아카데미상(BAFTA) 국제 장편영화 부문 후보에 오르는 한편,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도 여러 부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인 오스카에서는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까지 거론됐으나,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해외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아쉬움이 꽤 크게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해외 반응
영화 평점 집계 플랫폼인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신선도 90% 이상을 기록했고, 메타크리틱(Metacritic)에서는 평균 84점을 받았습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란 전문 평론가들이 해당 영화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 비율을 퍼센트로 나타낸 수치로, 일반적으로 75% 이상이면 우수한 작품으로 분류됩니다(출처: 로튼토마토). 90%를 넘긴다는 건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견 없이 고평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해외 평론가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이 영화의 서사 방식이었습니다. 사건 해결보다 인물의 내면과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는 구조가 기존 서구권 스릴러 영화와는 다르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일부 평론가는 '히치콕이 21세기에 부활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히치콕 식의 심리적 긴장감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입니다. 뉴욕타임스는 헤어질 결심을 2022년 최고의 영화 3위 안에 선정했습니다. 그 외에 주요 매체들도 앞다퉈 극찬을 내놓았습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도 감수성 깊은 표현 방식에 대한 공감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일부 서구권 관객들은 전개가 느리고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반응이 꼭 영화의 단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정과 분위기가 중심인 영화는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볼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로 해외에서도 재관람을 권하는 후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결국 해준이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충실한 아내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감정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아무리 연출이 훌륭해도 보는 내내 마음을 편하게 두지 못하게 합니다. 그게 제 개인적인 취향과 충돌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스러운 로맨스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또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지만, 헤어짐에는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결심 안에는 자신이 쌓아온 감정과 그 시절의 자신을 끊어내는 용기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첫사랑은 평생 간다'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첫사랑이 미완으로 끝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또한 '헤어짐'이라는 결론을 냈지만, 감정은 '미제'로 남습니다. 미완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채 남겨진 감정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런 영화입니다. 취향에 맞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한 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